저희 아버님께서는 1974년 6월 29일68세의 나이로 미국에 이민오셨습니다. 한국을 떠나기 전 송별회 때
    "나도 이제는 바울과 같이 전 세계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겠다"고 여러 동요목사님들 앞에서
    선포하셨습니다. 과연 아버님께서는 Chicago, Jersey City, Philadelphia, Erie, Denver, Boston,
    Greensboro, San Jose, LA, Vancouver 등 10여개 이상의 도시와 8개주 이상의 여러 지역에서 복음을
    쉬지 않고 전하셨습니다.

    처음에 미국에 오셔서 Chicago에 거주하실 때, 저희 집 앞에 한 야간 대학교 (Truman Community
    College)가 세로설립되었썼고 민병철씨가 거기서 영어회화반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아버님은 자명을
    야곱으로 지으시고 과거 옥중생활때 성경구독이 허락되지않아 선택했던 영어공부를 이제 약 30년후 다시
    실시하게되어 그 공부에 열중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야곱을 좋아하셨고 또한 야곱처럼 험난한
    삶을사시면서 신앙을 지키셨습니다. 아곱이 말년에바로 왕 앞에 서서 말하기를: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백삼십년....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아버님도
    야곱과 같이 그의 삶에 많은 풍난풍파를 경험하셨으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단순한 신앙으로 자신의
    험란한 순간들을 이겨내셨습니다. 야곱이 말로에 바로를 축복했듯이 아버님도 어려운 삶 가운데서
    수많은 사람들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전달 하셨습니다.

    1988년 Denver에서 목회 하실 때에 San Francisco에서 부흥회를 마치시고 돌
    아오셔서, 무척 피로하셨든지 갑자기 왼손바닥에 대상포진(shingles)이라는 고약한 신경통 관계의
    피부병에 걸리게 되셨습니다. 이 병은 완전히 나을 수 없는 병으로 어느정도 나은 후에도 평생동안
    후유증을 앓는 병입니다. 한참 고통이 심하실 때는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고통을 생각하시며 그 고통에
    동참하는것으로 여기시며 견디어 내신다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은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내게 하려 함이라" (고후4:10)는 성경구절을 제에게 직접 찾아
    읽어 주시며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지 않고는 자신의 고통을 이겨 내지 못하였을 것
    이라고 말씀 해 주셨습니다.

    그 다음 해 1989년 5월 Chicago에 거주했던 둘째아들 (정신)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Boston 에서
    Chicago로 오시면서 공항에 도착후 마중나온 작은아버님 이명재목사님과 박영숙권사님을 보며
    터뜨리셨던 울음소리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이어서 1990년초 과거에 매우 사랑하셨던 친구 차재선
    전도사님의 사모되시는 백영희권사님이 세상을 떠나게 되셨을 때도 무한한 애통의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1960년대의 아버님은 무척 엄격하신 분이였던 것같습니다. 라디오나 TV를 하나의 세속주의의
    도구로생각하시고 그런것들을 엄히 막으셨습니다. 그 외에도 신신학이나 교단분열 및 올바른 교리성립
    등의 문제에 많은 열중을 보이셨읍니다.  그러나 미국이민 이후부터는 교리적인 문제보다는 성령강림
    또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삶에 대한 교훈을 많이 연구하시며 가르치셨읍니다.

    점심식사시간에 그 날 아침연구에서 깨닭은 진리를 종종 저희식구들과 합께 나누곤 하셨
    습니다.  요한복음에 있는 예수님의 마지막 작별기도에 많은 관심을 두고 연구하셨던 것이 기억남니다.
    요한복음 14:20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안에, 내가 너희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하는 말씀을 혼자 반복하시던 음성이 지금도 귀에 생생합니다.

    어느 날 아버님께서는 저에게 말씀하시길, 로마서 15:3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라는 말씀을 한 젊은 목사님께 목회의 비결이라고 가
    르쳐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외 또 아버님께서 즐기시던 성경구절은 고후 3:18 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말미암음임이니라" 라는 말씁니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영광은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죽는 생활에 있는 것이다"라고 한 설교 ("날마다 죽는 생활,”하늘에서 온 방문객, 176)
    에서 말씀하셨던것 같이, 날마다 자아를 죽이고 그리스도의 영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 기독인의 가장 큰
    과제와 영광로 생각하시며 그것을 가르치시고 실천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신사참배 반대로 의해 치르신 여려운 옥고는 저희 가족들이나 그외 다른사람들에게 많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위에 언급한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옥고를 가볍게 평가했습니다: "때가 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용감히 생명을 내어던져 순교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영광은 날마다 죽는 생활이다”(176). 신사참배반대운동과 순교의 각오는 그때당시 기독인으로써는
    누구나 으례히 했어야 하는것으로 여기셨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옥고나 업적을 자랑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님의 오른 쪽 눈은 이미 수년 전부터 거의 상실된 상태였습니다.  아마 옥중에서 영양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신것 같습니다.  그 이후 왼쪽눈으로만  시력을 지탱하시며 독서에 열중하셨습니다.  
    그러나 작고하시기 약 2년 전 어느 날 아침 침실에서 기립하시면서 "내가 이젠 이삭과 같이 됐다"고
    하시면서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리시게 되셨습니다. 의사 설명에 의하면 왼쪽 눈동자 뒤의 잔 핏줄이 터져
    시력이 상실되었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즐겨 읽으시던 성경과 설교집들을 더 이상 읽지 못하게 되시며,
    평상시 즐기시던 산책도 중단해야만 하시게 되셨습니다.  온종일 하루를 침상에서 거의 지내셔야만 했던
    안타까운생활을 하시게 되셨습니다.   

    옥고를 한때 같이 치럿던 안이숙 여사께서 아버님을 가리켜 "어린양과 같이 순한 분"라고 그의 자서전
    (죽으면 죽으리라)에서 표현하셨던것 같이 저희 아버님은 이삭과 같이 인자하고 온유한 분이셨습니다.
    "인자한 재상"이라는 자명의 뜻 그대로 아버님은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까지 모든 고통과 불편을 한
    양과같이 준진하게 견디어 내셨습니다.

    2000년 4월 30일 필라델피아의 벗꽃이 주루럭 떨어지는 한 주일 (부활절 이후 첫주일) 새벽
    1시50분경에 가냘픈 봄바람과 같은 숨을 마지막으로 쉬시며 그는 아내의 목격하에
    조용히 하나님품으로 떠나셨습니다.

    이정수
막내 아들의 기념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