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니 그의 죽음에 동참하여 죄성의 자아는 죽고 그의 부활에 동참하여 새 생명 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넘처 흐르는 생명강, 27-28). “오늘의 교회는 교인수는 많지만은 주님의 속죄의 사랑에 감격하여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을 자가 얼마나 되는가?” (넘처 흐르는 생명강, 359) “공중에 높이 뜬 학은 참새와 함께 좁쌀 한알을 가지고 다투지 않는다. 하나님의 신실성을 믿는 사람들은 사소한 세상것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넘처 흐르는 생명강, 107). “인생이란 누구나 다 죽음 앞에서는 심각해 진다. 거기는 초자연적이요 신비스러운 면이 있다. 왜냐하면 인생은 단지 동물이거나 지능적인 기계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냉정한 사람이라도 죽음에 직면하면 영적이며 감흥적이 될수 밖에 없다. 인생은 죽음에 임할때 직감적으로 영원한 세계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므로 죽음보다 더 엄숙하고 신비룝고 경이스러은 것은 없다” (넘처 흐르는 생명강, 354). “어떤 환난이나 핍박이나 순교의 죽음도 기쁨이 없이는 감당할 수 없다. 전도자의 유일의 비장물은 바울이 가진 바 이 거룩한 기쁨이다 (빌4:4)” (하늘에서 온 방문객, 175).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한 자가 천국에 들어가는것이 나귀 발로서 전자올갠을 타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하늘에서 온 방문객, 141). “믿음은 성령 유입(유입)의 길이요, 사랑은 성령유출(유출)의 길이다.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 (갈5:6) 이라고 바울은 말한 것이다. 믿음으로 받은 생명을 사랑으로 흘러내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 신자이다.… 좋은 개천은 항상 받아서 흘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입문과 출문이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성령 충만을 받는 비결, 127, 128) “그리스도를 주로 삼는 그의 신민(臣民)들은 자기 주께 충성하다가 죽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긴다. 우리 한국 교회는 이조때부터 일제침략시대와 북한 공산군 침략시대까지 많은 순교자를 낸 것이 비극이지만 우리의 자랑이다. 때가 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용감히 생명을 내어던져 순교의 영광을 누리게 될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영광은 날마다 죽는 생활이다….. 우리가 순교사화를 읽을때에 나도 믿음을 굳게 지키다가 주를 위하여 죽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우리에게 날마다 죽는 믿음이 준비되어 있지않는 한 정작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어야 할 그 시간에 베드로 처럼 딴 길로 갈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날마다 죽는 믿음으로 날마다 생활이 이루워지지 않으면 현재 벌써 주님을 부인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참된 신앙생활이란 이것이 기본적인 것이다. 자기 부인없이 주님을 따를 수 없고 날마다 죽지 않고는 그리스도로 살수 없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사랑이란 근본적으로 내가 죽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나의 옛 사람인 육신이 죽음으로써 가능하다. 날마다 죽는 생활로서 나를 부인하고 내 안에 새 생명이 자라나므로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 죽는 생활의 의의 (意義)가 있는 것이다” (하늘에서 온 방문객, 176-79). “성령님은 그리스도를 우리 심령에 인쳐 주심으로 우리는 우리목숨을 내어놓았으면 놓았지 예수님을 내어놓을 수는 없지 않는가!” (성령 충만을 받는 비결, 155). “히브리서 11:35을 보면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저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했다. 오늘날까지 교회역사상에 많은 순교자들이 주를 위하여 지사 충성한 것이 이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온 방문객, 185). “진정한 신자 생활에는 독특한 우선 순위가 나타나는데 그 첫째가 하나님을 위하고, 둘째가 남을 위하고, 그 다음이 자기를 위한다. 로마서 15:3에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라고 했다. 그리스도를 배운 신자라면 자기 보다 남을 위해 살 자이다” (성령 충만을 받는 비결, 2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