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재 목사 설교 중에서

    동역자들에 관하여

    “한국의 순교자 주기철 목사는 신부의 정결을 지키다가 평양감옥에서 순교했다.  이 순교자의 장례식을
    거행하는 산정재 예배당 위에는 서광이 등천한 사실을 목격한 증거자의 말을 나는 들은적이 있다” (넘처
    흐르는 생명강, 28).

    “한국의 순교자 주기철 목사는 설교에 있어서 세계적이었다.  내게 그의 설교 준비하는 모습을 엿볼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는 다음주일 설교를 위하여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기도하고 명상중에서 영감된 말씀을
    백지에 써 모은다.  그래서 토요일이 되면 자기 서제에 들어가서 이것을 조직하고 정리한다.  그리고 연마에
    연마를 가해서 완성이 되면 중형 노트에 정서해 올린다.  그래서 주일아침 장시간 기도를 통하여 나오는 그
    설교이므로 주옥과 같이 흘러 나왔다.  그의 메세지는 분명했다.  마치 전투장에 나선 군병들에게 용기를
    불러 일으키는 나팔소리같이 힘있고 분명했다.  설교를 들은 청중에게 새로운 결심과 용기를 주었기 때문에
    일제의 앞잡이 노릇하던 평양노회가 강제로 산정현 교회 문을 닫기까지 온 교회는 일제의 세력에도 굴하지
    않고 진리를 파수하는 교회로 굳게 서 있었다” (넘처 흐르는 생명강, 326).  

    “한국의 순교자 주기철목사와 그의 부인 오정모 선생과의 그 애정은 유별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섬기는
    그일에 충성하기 위하여 느 그들의 애정은 없는 듯 했다” (넘처 흐르는 생명강, 333).

    “한국의 손교자 주기철 목사를 탈직하고 목사관에서 80노모를 쫓아낸 이가 누구였든가?  그때 평양
    노회원들이 아니였든가?” (하늘에서 온 방문객, 116)

    “일제 때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봉청 감옥에서 순교한 박의흠 전도사의 따님이 자기 아버지가 면류관을
    쓰고 있는 환상을 보고 기뻐하면서 아버지가 순교하게 해 달라고 기도 했다고 한다” (하늘에서 온 방문객,
    117).

    “일제말에 한국교회가 핍박을 당할때 우리 신앙선배들이 경찰서 유치장에서 간수들에게 물벼락을
    맞으면서도 예배시간을 지켰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그 충성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모진 고난도
    이겨내지 아니했다.  그때 유치장 밖에서도 성도들이 하루 세번씩 예배드리는 일을 파수했다.  
    박인순전도사는 그 지도자 중 한분이다” (넘처 흐르는 생명강, 48).

    “한국교회에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힘쓴 한 분을 나는 잘 안다.  그는 모든 성도들의 동경의 대상이라 그가
    세상떠나서 장례식을 거행할때에 전국의 5천여 성도들이 흰옷을 입고 구름같이 모여들어 그의 서거를
    애석히 여겼다고 한다.  나도 작년 (1977년) 8월에 그 집을 방문하고 대성통곡을 금할수 없었다.  그분은
    여러분이 잘 아는 한상동 목사이다 (넘처 흐르는 생명강, 70)”

    “나는 1977년 8월 고신 교단 창설 30주년 기념 대성회에 참석하러 부산에 갔을때에 이미 고인이 된
    한상동목사댁에 가서 그 부인과 함께 한없이 울은 일이 있다.  생사를 같이한 옥중동지가 세상을 떠나 그
    얼굴을 보지 못할때 얼마나 섭섭한지 말로 다 할수 없었다” (넘처 흐르는 생명강, 113).

    “나는 일정때 그들이 교회를 핍박할때 한상동목사와 같이 신사 참배 반대운동하러 다닐때 주임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 깊이 느껴져서 아무리 위험한 곳을 다녀도 마음 든든했던 것을 지금도 잊을수 없다”
    (넘처 흐르는 생명강, 164).

    “한국 거창에 배추달 집사는 주일성수 하다가 순교한 일도 있다” (넘처 흐르는 생명강, 158).

    “한국의 순교자 손양원 목사의 시호는 ‘활석’ (活石) 즉 산돌이라고 했다.  그는 과연 산돌 이었다.  일본이
    국력으로 도 그의 신앙인격을 깨뜨리지 못했고 공산군의 세력도 그를 이기지 못했다” (넘처 흐르는 생명강,
    298).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기 위하여 존재하고 있다.  … 우리인생이 [만물의 대변자요
    대제사장의] 역활을  못한다면 만물을 사용할 권리가 있겠는가?  한국의 순교자 최봉석 목사는 어떤
    연회석상에서 닭교기 요리를 먹으면서 이런 말을 해다. ‘이 닭이 얼마나 기뻐하랴?  성도의 입에 들어가니
    말이야!’  우리는 만물을 악용하는 죄를 회개하자” (하늘에서 온 방문객, 140).

    “우리는 한국의 6.25 동란을 잊을 수 없다.  부산과 마산이 북괴군에게 함락직정에 있을때 전국교회
    목사들이 부산 초량교회에 모여서 두 주간동안 부흥회를 가지고 목사들이 신사참배한 죄를 통해자복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다.  그때 하나님께서 박윤선 목사를 통하여 역사 하셨다”
    (하늘에서 온 방문객, 130).

    “개혁주의 신학의 권위자인 박윤선 박사는 기독자의 별명을 ‘회개지인’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서 기독자는 ‘희락지인’이라고 또 하나의 별명을 붙이고 싶다.  천당에는 기쁨의 노래가 충만한
    곳이며 지옥은 영원한 고통과 슬픔의 곳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하늘에서 온 방문객, 172).

    “한국 신학계의 원로인 고 박형룡 박사는 우리 한국교회는 미국의 청교도들의 전통신앙을 받은 교회라고
    주장하면서 우리와 우리 자손들도 이 신앙의 전통을 이어 가자고 항상 강조한 바 있다” (넘처 흐르는
    생명강, 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