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양글에 오형 지속이 삼천이로되 이죄 막대의 불효 (五刑 之屬 三千以罪 幕大於 不孝)라고 했다. 3천 가지 죄중에 부모에게 불효한 죄가 더 크다면 부모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죄야 더 말할 것이 있으랴!” (넘처 흐르는 생명강, 44) “공자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군자는 낙이불음하고 애이불상 (君子樂而不淫 哀而不傷)’이라고 했다. 그는 하늘의 소망을 알지 못하면서도 그렇게 말했다면 하물며 우리성이랴?” (넘처 흐르는 생명강, 333- 34). “옛날 두자미 (杜子美) 시인은 이런 시를 읋었다. “君不見 管豹貧時交 比道今人葉如士” ‘그대는 관중과 포숙이가 가난할 때에 교분을 보지 못하였는가. 이 도(道) 를 오늘의 사람들은 분토같이 버리도다’란 말이다. 이 두 사람은 이해와 관용이 있기 때문에 어려울 때에도 친분이 더욱 두터웠다는 말이다. 재산을 분배할때에 포숙이 많이 취하니 관중이가 ‘포숙이는 집이 가난하니 많이 가져야지’하고 이해 하고 시비하지 아니했다고 한다. 불신자도 이러하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런 이해화 관용이 없는가? (하늘에서 온 방문객, 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