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민 장로

    등잔불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
    밀양마산교회 초대 장로, 박수민(1878.11.11~1960.1.18)  (사진)

    밀양마산교회 초대장로인 박수민 장로는 한학을 하신 선비였다. 그리고 침술에 아
    주 능하였다. 당시 밀양 박씨가문이 일가를 이루어 살고 있는 상남면 금동에서 살다가
    같은 면 오산으로 이사를 하였다. 하루는 자신의 집 뒷집인 강춘국의 집에서 노래 소
    리가 들려왔다. 그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지만 그 가락에 매혹되었고 알고 보니
    찬송가였다.
    드디어 박수민은 주일이 되어 마산교회를 찾아갔다. 그때 마산교회 사람들은 어리
    둥절 하였다. 평소 동네에서 존경받는 지체 높은 양반이 교회에 찾아 왔다는 사실에
    놀라 서로 앞 다투어 갓을 받아 벽에 걸고 담뱃대를 받아 초가지붕 처마에 꽂는 등 일
    대 소동이 일었다.
    교회를 찾아갔던 그 첫 주일에 예수께서는 그의 마음을 열게 했고 그는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온 즉시 술을 끊고 담뱃대를 부러뜨렸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엔 머리의
    상투를 짤랐다. 그 당시로서는 경천동지(驚天動地) 할 중대한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그가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여기다가 그가 예수에 미친 것을 알고부터는
    가혹한 핍박이 시작되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밀양 박씨 문중에서 파문을 당하게 되었고, 농토마저 몰수
    당하는 바람에 많은 식구가 굶주림에 허덕이게 되었다. 큰아들을 남의 집 머슴으로 보
    내서 입 하나라도 덜라는 이웃사람들의 조언도 단호히 거절했다. 그 이유인즉 그렇게
    하면 주일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었다.  같이 굶어 죽을지언정 신앙을 저버리게 할 수
    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철저한 신앙인을 하나님이 저버릴 리가 없었다.  
    하나님이 형통의 복을 주시자  소작으로 짓던 논을 사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생활고를
    면하게 되었다.
    그는 슬하에 5남 2녀를 두었는데 자녀 모두 다 부친의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아서
    아들 삼형제(박손혁. 박치덕. 박정덕)가 목사가 되었고 그 후손 가운데서는 3대 목사
    (박손혁➜박재영➜박기흠 / 박치덕➜박재우➜박주흠)와 3대 장로(박수민➜박순용➜박재
    명), 그리고 2대째 목사(박정덕➜박재철) 가문을 이루었다. 이제 4대째에 이르러 친
    손주와 외손주를 합아여 약 130명 중 목회자가 16명이나 되는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
    . 당시로서 아들 3형제를 목회의 길로 가게 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었다.
    신사참배 문제로 마산 문창교회에서 밀양 마산교회로 부임하신 한상동 목사님과 박수
    민 장로는 한국교회가 우상에게 항복하여 범죄 할 때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거룩한 그루
    터기였다.
    한번은 신사참배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그를 강제로 신사로 끌고 가서 참배를 시킨
    적이 있었다. 끝까지 이를 거부하자  한목사님과 함께 밀양 경찰서로 연행해갔고 심한
    구타와 온갖 모욕을 가하였다. 결국 한상동 목사님은 평양 형무소로 끌려가게 되었고
    박수민장로는 심한 매질 끝에 석방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주를 위해 매 맞고 핍박
    받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하여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고 한다.
    그때의 구타로 고막이 파열되어 청력을 잃어버렸다. 청력은 잃었으나 시력은 젊은
    사람 못지않아 호롱불 아래서도 깨알같은 성경을 애독했다고 전해진다. 마지막까지도
    성경을 벽에다 기대어 놓고 읽다가 83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


                                                                            박시영 목사 공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