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보이는 고동색 책꽂이에 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별로 제 관심을 일으키지 않았던 책들중 그날 특별히 한 권이 눈에 티였습니다. 읽지 못하는 한국 책의 페이지를 막연히 넘기다가 마지막 페이지에서 내 눈이 멈췄었습니다. 거기에는 할아버지 이인재 목사님의 희미한 흑백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 할아버지의 전기서를 내가 손에 들고 있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한 영웅적인 인물이십니다....
4개월 동안 감옥에 수감되어 굶주림과 구타를 당하셨고 추운 겨울의 차가운 감옥마루를 담요하나로 견디어 내셨습니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밥 덩어리 하나로 끈기를 태워내야만 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 신을 섬기는 것을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이 신사참배 거부로 수감된 동요 자들을 할아버지와 함께 다 같이 사형 집행에 넘기려고 하던 중 8.15 해방으로 인해 그들을 다 해방 시켜야만 했었습니다. “왜 도망가지 않았어요?”라고 나는 아버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버지는 대답하기를 “많은 동요 자들이 산으로 피하여 도망갔으나 할아버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담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싸우셨지.” 할아버지의 용감성을 말해주는 또 다른 하나의 사건은, 어느 날 할아버지의 한 올케가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하다가 깜빡 잠이 드는 바람에 옷에 불이 붙게 되고 곧 온방이 불덩어리가 되었을 때 할아버지가 용감히 뛰어 들어가 자신의 몸에 화상이 입기 까지 희생적으로 올케를 구해셨다고 합니다. 남을 위해 자기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았던 분 이였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용감하신 반면에 또한 겸손 하셨습니다. 출옥 후 그는 갑자기 한 영웅의 대우를 받게 되었으나 그러한 대우를 사양하였습니다. 옥고를 치른 동역 자들은 유명하고 거대한 교회에 사역하게 되었으나 그러한 자리를 사양 하시고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시골교회들을 찾아 시무 하셨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는 다른 목양자들에게 맡기고 다른 곳으로 이전하신 적이 여러 번 이였습니다. 목회에 전렴하시고 한평생을 헌신하셨지만 그는 그의 엄적을 자랑하기를 꺼려하셨습니다. 온유, 겸손, 신의가 가장 귀한 성품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그의 설교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셨습니다. 그의 설교는 주로 긍정적 이였고 기쁨과 희망을 가져다주는 설교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의 마음은 마르지 않는 자비의 원천 이였습니다. 한 예를 들어, 그의 설교가 저 외삼촌의 젊은 생을 새로이 바꾸어 놓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의 부친이 사업에 실패하여 한 해 동안의 생활을 겨우 유지해 가면서 좌절감에 빠져있을 때 할아버지의 설교를 한 저녁 예배 때 듣고 새로운 각오로 삶을 살게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부터는 기쁨과 평화로 생활을 할 수이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이런 모양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셨습니다. 2000년 4월 29일 [캘리포니아 시간] 할아버지께서 소천 하셨습니다. 그의 이별은 슬픈 일이나 그의 삶을 바라볼 때 오히려 기쁨이 생깁니다. 평생 하나님을 섬기는데 헌신 하셨으며 보람된 한 평생을 사신 것 같습니다. 목음전파에 온전히 한평생을 바치시며 많은 사람들의 심령을 감동시키시고 평화와 덕을 끼치신 분이셨습니다. 지금은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에서 주님의 얼굴을 뵈오며 마땅히 받아야 할 칭찬과 상을 받으시고 계시겠지요. 먼 장례에 그를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만나게 되겠지만 지금 현제 그는 나의 한 영웅이 되어 있으며 그가 남긴 엄적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영원히 그는 나의 영웅이요 나의 본으로 남아 계실 것 입니다. |
| 손녀의 기념 글 English |

| A Korean art work purchased and owned by Rev. Lee |
| 이 규 하 10세 손녀 2000년 5월 캘리포니아에서 이정수 번역 |